Interviewee김어현 Interviewer김효주 / SHOPGAIA 가이아를 통해 알게 된 그녀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SNS에서 마주한 초록과 파랑, 몇 개의 문장이 그녀를 짐작하게 하는 전부에 가까웠습니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잠시 막막했지만, 한 사람을 알아가는 데 꼭 많은 정보가 필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의 공백은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며 조금씩 채워갈 수 있을 테니까요. 영화 〈녹색광선〉 속 주인공이 수평선을 바라보며 빛을 기다리듯, 우리도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마음들을 함께 바라보았습니다. Q1.2026년의 절반이 지나고 벌써 9월이 왔습니다. 올해를 모두 돌아보기에는 아직 조금 이른 시점이지만, 여름이라는 계절 하나를 보내며 잠시 멈춰 서기에는 좋은 때인 것 같아요. 어현님의 이번 여름은 어떠셨나요? 저는 매년 1월 1일이 되면 지난해를 돌아보는 기록을 남기는 편이에요. 일기를 쓰다 보면 그때그때의 감정이 많이 담기는 편이고, 꼭 긍정적인 내용만 쓰지는 않아요. 그래도 마지막에는 결국 앞으로의 계획이나 다짐을 적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 여름은 잘 보냈어요. 다만 비가 많이 오지 않았던 건 조금 아쉬웠어요. 저는 장마처럼 축축하고 시원한 날씨를 좋아하거든요. 물기가 있는 풍경도 좋고요. 사람이 너무 건조하기보다는 조금은 촉촉한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웃음) Q2.여름이 끝날 때면 유난히 아쉬운 사람도 있고, 오히려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계절이 바뀌는 순간을 잘 느끼는 편인가요? 계절마다 저에게 남아 있는 감각과 이미지가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제게 여름은 〈녹색광선〉과 〈영원과 하루〉이고, 겨울은 시규어 로스와 〈하늘 높이〉예요. Q3.SNS의 짧은 맨션들이 꽤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원래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글로 남기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평소나 현실에서는 제 생각이나 감정을 솔직하게 말로 꺼내는 편이 아니에요. 그래서 오히려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글에서는 저 자신을 해소하기 위해 조금 더 직접적이고 강한 표현을 사용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말로 할 때보다 더 솔직해지기도 해요. 어떤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너무 긴 과정이 필요할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제 방식대로 단어를 정의하고 표현하는 편이에요. 결국 글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저 자신을 해소하기 위한 방식에 가까운 것 같아요. Q4.어떤 사람에게는 글이 기록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정리이며, 또 어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을 꺼내놓는 방식이기도 하잖아요. 어현님에게 글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메모장을 자주 여는 편이에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바로 적어두기도 하고요.청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계속 혼자 살고 있는데, 예전부터 생각이 많은 편이었어요. 그런데 정작 제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무엇 때문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스스로도 잘 모를 때가 많았어요. 그래서 글은 저에게 생각을 토하고 비워내는 창구에 가까워요. 그렇게 꺼내놓은 생각을 다시 바라보고, 비교하기도 하고요. 계속 비우고 다시 채우는 순환 같은 거죠. 조금 더 큰 의미에서 보면, ‘실존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상 작가의 〈날개〉를 좋아하는데, 마지막에 주인공이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고 말하잖아요. 그것이 자신의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라고요. 저에게 글을 쓰는 일도 어쩌면 내가 잃어버린 날개를 찾거나, 그것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다시 인지하려는 노력과 비슷한 것 같아요. Q5.혼자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어현님에게 혼자 있는 것은 ‘외로움’과 가까운 일인가요, 아니면 오히려 가장 편안한 상태에 가까운가요? 스무 살 전에는 혼자 살아보고 싶었어요. 혼자 살면 오히려 외로움을 덜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혼자 살아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 (웃음) 최근에는 외로움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어차피 인간이라면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피하기보다 혼자 있을 때 그 감정을 조금 더 명확하게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느끼는 외로움이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알고 싶어요. Q6.우리는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너무 오래 혼자가 되면 또 누군가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혼자 있고 싶은 마음과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찾아올 때, 어현님은 어느 쪽의 마음을 더 믿는 편인가요? 그렇다면, 사람을 믿으세요? 저는 실망하게 될까 봐 사람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자기방어가 있는 편이거든요. 상대에게 상처받기 전에 제가 먼저 싫어하거나 마음을 닫는 편이에요. 최근에 연애를 시작했는데, 그전까지는 애정에도 어느 정도 선을 두면서 제 마음을 지킬 수 있었어요. 그런데 사랑은 그 선을 조금씩 무너뜨리는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단어로만 표현해야 하는 연인 관계가 불안하고 아직은 낯설어요. 그래서 혼자 있고 싶은 마음과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싶은 마음 중 무엇을 더 믿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그 답을 알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Q7.무언가를 선택하기 직전에는 대개 확신보다 망설임이 먼저 찾아오는 것 같아요. 어현님은 원래 결정을 빠르게 내리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오래 고민하는 사람인가요? A와 B처럼 선택지가 명확한 문제라면 비교적 빠르게 결정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정답 자체가 없는 고민, 마치 열린 결말처럼 무엇이 맞는지 알 수 없는 문제 앞에서는 오래 머무는 것 같아요. Q8.확신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충분히 생각한 끝에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생각보다 먼저 몸이나 마음이 알고 있는 것인지요. 어현님은 자신의 확신을 어떻게 알아차리는 편인가요? 대부분 충분히 고민한 뒤에 결정을 내리는 편이에요. 점심 메뉴처럼 가벼운 선택은 감으로 결정할 수 있지만요. (웃음) 중요한 선택일수록 충분히 고민해야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제가 기준으로 삼는 것은 어떤 선택이 덜 후회될 것인가인 것 같고요. Q9.지금의 자신에게 아직 도착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고 느끼시나요? 그것이 장소일 수도 있고, 어떤 상태일 수도 있고, 아직 만나지 못한 자신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녹색광선〉을 보면서 주인공에게 계속해서 녹색이 나타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어요. 녹색광선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지만, 주인공은 그것을 인지하고 깨달아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그곳을 찾아가잖아요. 저는 그 과정이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가는 일처럼 느껴졌어요. 어떤 것이 우연히 내 앞에 나타났더라도 그것을 인지하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결국 스스로 그것을 찾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녹색광선〉의 주인공은 불안한 사람이잖아요. 저는 오히려 불안한 사람일수록 무언가를 더 찾게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왜 불안한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 이유를 계속해서 찾게 되는 것처럼요. 저 역시 제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을 충분히 거친 뒤, 조금 더 순수한 결말을 마주하고 싶어요. 마지막에 주인공이 녹색광선을 보고 흘리는 눈물도 모든 것이 완전히 해소되었기 때문은 아닐 것 같아요. 어쩌면 아주 짧은 순간,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잠시 안심하는 감정에 가까웠을 것 같아요.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았더라도, 그 찰나를 보기 위해 살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어요. 작품 속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인간의 강, 인간의 깊은 강의 슬픔. 그 안에 저도 섞여 있습니다.” 각자의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 모든 슬픔을 강이 감싸며 흘러간다는 문장이에요. 그걸 읽으면서 저 역시 그 거대한 흐름 안에 섞여 있는 존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제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무언가를 찾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도 제 안에서 계속 흘러가고 있는 어떤 것을 발견하는 일에 가까운 것 같아요. Q10.녹색광선은 해가 수평선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는 아주 짧은 순간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보기 위해 오랜 시간 수평선을 바라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기다리지 않았지만 우연히 마주치기도 하겠지요. 지금의 어현님이 수평선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녹색광선’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환상일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환상은 희망이고, 사랑이며, 생명력일 수도 있잖아요. 언젠가 그런 환상이 제 안에서 흘러나오는 순간이 오기를 바라요. 〈환상유출〉은 제가 언젠가 낼 시집의 제목으로 생각해 둔 이름이에요. 환상이 제게 정확히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는 그때가 되어야 알겠죠. 하지만 제게 환상이 찾아온다면, 그것은 이 삶과 내일을 조금 더 기다리게 해주는 것이었으면 해요. 제게 찾아오는 녹색광선은 이상과 현실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을 넘어 제가 온전히 품을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한 사람의 고독과 망설임에서 시작해, 자신 안에 남아 있는 것들을 들여다보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무언가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빛을 발견하는 순간보다, 기다리며 계속 바라보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네요.저는 오늘도 우연처럼 찾아올 녹색의 무언가를 기다립니다.